초등학교 6학년 때 이모가 사시는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 이모 집은 5층 아파트였는데 이모 집을 갈 때마다 나는 아파트를 둘러싼 검정 페인트 색의 철제 담장 앞에서 멈칫하고 움츠려 들었다. 이사 오기 전에는 산과 들의 여러 갈래 길을 마음대로 뛰고 달리며 자유로웠다면 담장 앞에서는 언제나 그러지 못했다.
당시 엄마는 출근길 보행 신호 시 5톤 화물 트럭에 치여 입원 생활을 하셨는데 그 시간이 3년이 아니라, 1년 이였다는 것을 몇 해 전에 알게 되었다. 같은 반 여자아이는 5학년 때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고 했다. 서로 낯선 곳에 와서 만난 이유로 우리는 모든 것이 다름에도 쉽게 친구가 되고 서로 길들여져 지금까지도 단짝 친구로 지내고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가방을 던져놓고 그 친구의 집을 안식처로 드나들었다. 친구의 어머니가 계셨고, 피아노가 있었고, 친구는 피아노 학원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가 알려준 화음을 신나게 두드리곤 했다. 친구가 피아노 학원을 가는 날에는 학원 앞까지 데려다 주고, 나는 이모 집에 가서 사촌 동생들과 놀았다. 나도 친구 따라 피아노 학원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형편은 못됐다.
어느 날 친구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들려주었다.
미레# 미레# 미시레도라
처음 「엘리제를 위하여」 피아노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순간 정말 자유롭고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그 곡을 들으면 행복도 느끼고 옛 생각으로 슬픔도 느껴진다. 베토벤이 두 명의 백작 영애로부터 사랑을 거절 당하고 새롭게 결혼하고자 마음먹고 작곡했다는 곡 트럭이 후진할 때 나오는 소리? 들을 때 마다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펴게 해 주는 명곡 가장 대중적인 베토벤 피아노곡 아들 7살 때 어린이집 여자아이가 「엘리제를 위하여」를 정말 잘 친다며 나보고 쳐달라고 했다.
“엄마 피아노 못 치는데...“ 미레# 미레# 미시레도라 아들은 한 음절에도 격한 반응으로 좋아해 주더니, 초등학교 1학년이 되어 전자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다. 심플 피아노 어플로 혼자 치면서 바흐 뮤제트에 빠져 틈만 나면 피아노를 치고 있다. 언제나 피아노를 치고 싶었던 나에게 아들은 경쟁 상대가 되었다.
아들이 “엄마는 어떤 곡이 제일 좋아?”라고 묻는다. “응, 엄마는 「엘리제를 위하여」가 좋아” 나는 항상 친구를 보며 피아노를 치고 싶었고, 나름 시도도 했었지만, 지금 다시 시작하고 있다.
단짝 친구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너무 치고 싶어서 악보를 외웠고, 엄마가 학원을 그만 다니라고 했지만 졸라서 다니며 6학년 때 피아노가 생겼다고 한다. 중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 봉사를 하고 있는 친구가 자랑스럽고, 나에게 멋진 곡을 연주해준 친구가 난 늘 고맙다.
나는, 「나만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고 싶다. 그리고 친구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우리동네연구소 바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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