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아직' 장애인이 아닌 삶
2021년이 밝았다. 새해에는 괜히 올해 목표나 바라는 점들을 정리해보고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돌이켜보게 되곤 하는데. 장애인단체에서 일하며 달라진 점이 있다면, 미래의 여러 가능성 중 하나에 ‘장애인’을 넣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의 나는 ‘아직’ 장애인이 아니지만 살면서 로또는 안 되더라도 장애인은 되지 않을까. 그럼 그땐 어떻게 될까.
II. 동네에서 휠링(Wheeling)하기
바야흐로 2018년, 우리동네연구소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마을을 점검하는 시민감시활동을 진행했다. 이름하야 “동네에서 휠링하자”
안전교육을 위해 휠체어보조기기생산업체(토도드라이브)에서 마련한 실내 교육장에 가서 1시간 가량 연수까지 받았는데 무서웠다. 다른 것보다 휠체어 가격이 비싸서 초보운전하다 행여나 망가트릴까 겁이 났다.(평범해보이는 수동휠체어도 200~300만원인 경우가 다반사, 특수휠체어는 600만원이 넘는다)
길 위에서 만난 것은 덜컥덜컥 등장하는 높은 턱과 패인 보도블럭, 차량진입을 막으려 설치된 말뚝(볼라드)와 불법 주차된 차량의 콜라보레이션. ‘다리’를 못쓰는 것도 서러운데, 안 쓰던 근육을 쓰려니 팔이며 어깨가 아파오고 골목을 지날 땐 어디서 자전거나 오토바이가 튀어나올지 몰르니 자꾸만 뒷목이 곤두섰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예상한 바였으나, 이내 신변에 위협을 느끼게 되었으니 빗물이 잘 빠지게 하려는 건지 미묘하게 빗면으로 설계된 보도블럭에서는 아무리 직진을 해도 휠체어가 오른쪽의 도로로 향했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기껏 애를 써서 도로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는 안전요원이 ‘왜 자꾸 도로로 가시냐’ 묻기에 긴 말 없이 ‘선생님도 한 번 휠체어를 운전해보시라’ 했고 운전자가 바뀌어도 한결같이 도로로 향하는 휠체어를 보며 나도 그도 허탈하게 웃었다. 두 번째 위기는 신호 길이가 짧기로 유명한 횡단보도를 지날 때왔는데 이러다 요단강도 함께 건널 것만 같아, 좀 전의 그 안전요원에게 도움을 청해야 했다.
III. 불쌍한 거 아니고 불편한 건데요.
그래도 세상은 생각보다 따사로웠다. 패인 보도블럭에 휠체어 바퀴가 빠지자 인근에 서 있던 시민들이 제 일처럼 다가와 도움을 주셨다.(다만 젊은 사람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 하는 물기어린 시선을 덤으로 받았는데, 그게 빠진 바퀴나 저린 팔보다 불편했다.)
그 중에서도 휠체어에 앉자 갑자기 ‘달리기 경기장’이 되어버린 동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탄을 기다리는 선수마냥 신호등을 째려보고 있을 때 아무 말 없이 뒤로 비켜나 순서를 양보해주는 시민 분이 제일 고마웠다.
하지만 따뜻한 마음이 당장 앞길을 터주는 것은 아니어서 목이 말라 들어선 마트에서는 좁은 진입로 때문에 내 몸이 테트리스 블럭이 된 것처럼 한바탕 묘기를 벌여야했고, 온종일 “(지나가게 비켜주세요) 잠시만요.”, “(길을 막아) 죄송합니다.” 소리가 연신 쏟아져 나왔다.
고작 1~2시간 휠체어를 탔을 뿐인데 동네가 위험해보였다. 오늘의 나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휠체어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지만, 내일의 내가 어떤 일로 걸을 수 없게 된다면, 듣거나 볼 수 없다면, 투석을 받아야한다면 일상이 어디까지 무너질지 가늠이 안됐다.
IV. ‘희망 대신 욕망’에 응하기
이듬해 장애인단체에 입사하면서 장애인권리보장, 장애인식개선이 업(job)이 됐다. 장애인이 될 경우 감수해야할 ‘불편’을 더 똑똑히 알게되고부터 그 어떤 성명서나 고발문보다 ‘장애를 극복한 감동 스토리’에 마음이 답답해졌다.
왜 장애인은 자꾸 ‘대단한 사람’아니면 ‘불쌍한 사람’으로 미디어에 등장하나. ‘불쌍하지만 훌륭한 장애인’이 ‘엄청난 의지’로 극복하는 ‘감동실화’가 너무 싫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 유명해지고 성공했다고 갑자기 생활 전체에 마법이 일어날 리가 없다. 장애는 ‘극복’하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생활에 늘 존재하는 불편이고, 듣는 사람의 역할은 ‘감탄’이 아니라 ‘고민과 행동(숙제를 나누기)’이어야한다.
민원전화와 국민청원이면 모를까 ‘어려움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아이콘!’, ‘저 사람(장애인)도 하는데 우리(비장애인)도 열심히 살자’ 는 말로는 바꿀 수 있는 게 없다. 몇 년 전 동네에서 휠링하다가 킬링할 뻔한 그 날, 내가 제일 싫었던 것은 ‘나를 빤히 들여다보는/ 나를 안쓰러이 여기는 따뜻한 눈들’이었다.
불쌍한 사람’이 된 기분, 그 따뜻한 눈빛들이 거북해서였을까, 길이 끊겨있으면, 불법주차 때문에 진입로가 막히면 화가 나야는데 자꾸만 고맙고 계속 죄송해했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참가자들이 모여 문제가 발견된 지점들을 지도에 취합해 담당부서에 전했다. 몇 달뒤 그 프로그램이 지역 우수사례로 상도 받고 담당부서로부터 개선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아마도 그건, 그 날의 감상평이 ‘좋은 일 했다.’ ‘몸 건강한 것도 복이다’, ‘건강한 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아니라 ‘장애인이 되면 이걸 감수해야한다고?’, ‘이건 좀 심각한 거 아니야?’로 시작하는 현실적인 불안과 분노였기 때문이리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60년 국내 인구 중 43.9%가 65세 이상이라 한다. 몸이 늙는 한 "장애가 나의 일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은 가능성이 아닌 필연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감동 뒤에 묻어둔 숙제를 풀어야 한다.
2021. 1. 22.
우리동네연구소 혜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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