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폭력의 공포... 그 끝은 어디인가?
가정폭력... 무엇을 우리는 가정폭력이라고 말하는가?
미친 듯이 맞아야만 가정폭력인가?
뺨을 한 대 때렸어도, 욕을 해대는 것도, 인신 공격적 발언으로 상대를 무시했을 때도, 경제권이라는 권력으로 억압과 통제를 하여도 이 모든 것은 폭력이다.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뺨 한대 때리는 것으로 시작되어 종국에는 무차별 폭행으로 목숨을 위협받기에 이른다. 그 속에서 아내들은 인내하고 또 인내하고 있었다. 자녀의 미래를 생각해서, 또는 나이가 들면 남편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또는 내가 잘하면 남편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결국엔 목숨을 위협받거나, 온 정신이 소진되어서 스스로 목숨을 잃거나 한다. 그나마 용기를 내어 이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이라는 선택을 하게 된다.
이혼... 가정폭력에서 벗어나 안전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선택하지만, 과연 여성과 자녀는 이혼의 과정에서 보호되고 있는가?
가정폭력 속에서 남편의 협박과 억압으로 빚을 지게 되면, 그 빚은 오롯이 여성의 몫이 되어 갚아야 하고, 또한 남편의 협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불법적인 일을 행하게 되었을 경우에도, 가정폭력이 입증되는 것과 상관없이 그와 관련한 모든 법적 책임을 여성이 모두 감당해야 한다. 이 무슨 지랄맞은 일이란 말인가... 일반 범죄에도 교사죄가 있는데, 가정폭력 피해자에게는 그런 것은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려되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내에서 일어나는 협박과 억압의 상황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으랴...
피해자들이 보호되지 못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폭행하는 남편을 피해 집을 나온 여성은 홀로 이혼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한번도 권리를 누려보지 못한 본인 명의의 집이나 차로 인해 무료법률구조 마저도 받지 못한 채 결국에는 남편에게 대부분의 재산을 뺏긴 채 빈손으로 이혼을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혼이 되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너무 감사해 한다. 폭행과 폭언, 통제와 협박이 난무했던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매일을 공포와 불안을 습관처럼 견뎌내야 했던 이들은 모든 재산을 포기하더라도 그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몸도 마음도 갈갈이 찢기고, 결국 생활환경까지 온전히 파괴된 채 이혼을 선택해야만 벗어날 수 있는 굴레... 가정폭력! 그 이혼의 과정에서도 이들은 또다른 폭력을 느끼게 된다. 가사조사, 면접교섭권의 과정에서 여성들과 아이들은 또다시 공포스러움을 감당해야 한다.
남편이 폭력행동들을 모두 부정할 경우 삼자대면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 조사실에서 나란히 앉혀서 조사를 한다. 면접교섭권은 또 어떤가?
엄마를 폭행하는 것을 모두 지켜본 공포를 겪은 아이가 아빠를 보기 힘들다고 진술서를 써서 보내지만, 법은 모든 이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일반론적 잣대를 들이대며 직접적 폭력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아빠에게도 자녀를 볼 권리를 줘야 한다며 법이 가해자 편에서 얘기한다. ‘가정폭력 이혼’ 이라는 피해자의 감정이나 상황을 무시한 채, ‘법이 그렇고 원칙이 그러니 어쩔 수 없어요’라는 말로 아이들의 공포감을 묵살시킨다.
법은 객관적이어야 하고 냉철해야 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하지만, 과연 그 법이 무엇을 위해 만들어 진 것인가? 법이 말하는 평등의 기준은 무엇인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관계에서 평등한 권리를 이야기하는 것, 이런 ‘평등하지 않은 법의 평등함’으로 피해자에게 또 다른 2차 가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사회의 ‘제도’는 언제쯤 깨달을 것인가.
이혼이 되어도 병적인 집착이나 보복에 의한 스토킹으로 끊임없이 목숨의 위협을 받으며 공포 속에서 평생 피해 다녀야 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왜 피해자가 도망 다녀야 하는가?
도대체 이 가정폭력의 끝은 어디까지 가야 보이는 것인가?
가정폭력... 남의 일인가...
내 이웃, 내 가족에게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그 어떤 폭력보다 친밀한 관계에서 증거도 증인도 없이 은밀하게 일어나기에, 그 어떤 폭력보다도 피해자들의 정신과 육체를 처참하고 피폐하게 만든다.
가정폭력이란 지옥과 같은 경험이고, 이혼은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악마같은 존재와 싸우는 것임을, 언제쯤이면 이 사회는 가슴깊이 ‘공감’할 것인가...
2021.4.30.
우리동네연구소 블루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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