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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우리동네연구소

[꿈틀대기] ‘나’로 살고자 하는 몸부림은 여전히 진행 중



나는 꿈이 많은 아이였다.

경찰이 되고 싶었고

군인이 되고 싶었고

외교관이 되고 싶었고

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고

화가가 되고 싶었고

뛰어난 심리상담사가 되고 싶었다.

나는 수많은 꿈을 가지고,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 한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왔다. 세상에서 내가 못할 것은 없을 것처럼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전진했다. 그렇게 치열하게 전진을 하던 중 갑자기 나의 시간은 급제동에 걸려버렸다.

사회의 일원으로서 행복을 위한 당연한(?) 수순이라는 <결혼>과 <출산>, <양육>의 새로운 시계가 작동하면서 부터 내 일상은, 내 꿈은, 내 미래는... 그리고 내 자존감의 위치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 존재의 이유조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꿈에는 <현모양처>는 없었다.

나는 아들을 낳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음식을 잘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빨래를 잘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청소를 잘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양육을 잘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시댁을 잘 부양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딸만 셋을 낳았다고,

음식을 잘 못한다고,

아이를 양육하는 게 서툴다고,

파트너의 밥을 제대로 못 챙겨준다고,

제사음식을 잘 못한다고,

시댁의 꼬장(?)에 얌전하게 수긍하지 못한다고...

왜? 왜? 도대체 왜??? 이런 것들 때문에 죄의식을 가져야하고, 주눅 들어 위축되어야 하고, 눈물 나게 슬퍼해야 하고, 힘들어 해야 하는가?

왜! 내 자존감을 그런 것들 때문에 지하 100층까지 끌어내리게 해야 하는가?

젠장 할…

3년 전 어느 날... 드디어 난 꿈틀댔다.

끝도 없고, 티도 나지 않고, 자존감조차 올려주지 못하는 이러한 것들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결단을 내렸다. 나의 작은 발버둥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이 집은 우리 5명 가족구성원 모두를 위한 곳이야. 그러니 여기 안에서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면 5명이 공평하게 나눠서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난 사실 살림을 잘하지 못해. 그동안 잘해보려고 했지만, 내 재능이 아니야! 난 밥하려고 응애~하고 엄마 뱃속에서 태어난 게 아니야! 이제부터는 내가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어! 나 한 명의 희생으로 여기 4명이 행복한 것~ 난 싫어! 난 행복하지 않아. 힘들고 지쳤어. 나도 행복 하고 싶어! 다 같이 공평하게 행복해야 되는 것 아냐? 이제부터 우리가 같이 쓰는 이 집의 일은 다 같이 했으면 해!! 그래야 공평하지. 안 그래?!!”

나름의 공평논리를 내세우며 <집안일 분담> 외쳐댔다. 그 당시 가족구성원은 나와 파트너, 5살, 7살, 2학년 아이들이었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다행(?)히도 동참해 주었다. 그 첫 시도로 큰 전지에 현재 가족구성원들이 하는 일을 각자 칸에 적게 하여 보았다. 그랬더니 하나도 못 적은 5살 막내(글을 모름)를 비롯하여, 파트너조차도 가끔 하는 설거지 외에는 없었다. 나의 칸은 전지를 길게 채우고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일들이 깨알같이 적혀있었다. 어찌 안 그렇겠는가? <빨래>하나에도 빨래 종류별로 분류하기, 분류된 순서대로 여러 차례 빨래하기, 빨래 널기, 빨래 개기, 빨래 각자 서랍에 넣기 등, 여러 가지의 일이 형성되니 그럴 만도 하지 않겠는가! 이를 본 나머지 구성원들의 반응은 ‘아니, 이렇게나 많았어?’하는 표정이었다.

쳇~! 그동안 얼마나 자신들이 나의 희생 속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었는지 몰랐을 것이다. 흥~!!

그리고 나서 파트너와 아이들에게 나의 칸에 적혀있는 것들 중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자기역할 칸에 적게 하고, 내 칸에서 지우게 했다. 내 칸의 내용이 중간정도 줄어들고 역할 배분이 어느 정도 끝날 즈음 나는 또 외쳤다.

“오늘 배분한 집안일들을 <도와준다>고 생각하지 않길 바래! 이것은 당연히 각자가 해야 할 일들을 그동안 내가 혼자서 감당해준 것이라는 걸 정확히 알아주길 바래!!!”라고 강력한 의지를 담아서 단호하게 못 박았다. 그렇게 역할배분을 하고 3년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자신의 역할이 당연하다는 인식이 그들에게 형성되어 가고 있다. 그리고 집안일 외에도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평등을 외치면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평등한 것이었다고 구성원들의 생각을 변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아들 없이 딸만 셋이지만 언제나 함께 깔깔대고 웃으면서 살고 있고,

음식은 전문가(?)의 솜씨를 존중하면서 건강에 좋은 것으로 골라서 제공하고 있고,

청소나 빨래는 모든 구성원이 다 함께 각자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고,

양육은 서로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있다.

그런데... 내 가슴에는 왜 아직도 죄책감이 남아 있을까...

야근하고 늦게 들어와서 엉망이 된 집안을 치우지 않고 들어가서 누웠을 때 편하지 못한 것...

저녁식사 후 설거지를 못하고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는, 파트너가 왔을 때 설거지 냄새가 집안에 퍼져있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한 기분...

엉망이 된 집안을 치우는 역할은 아이들 역할이었고, 설거지는 파트너의 역할이었기에 나는 당당히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었는데도 마음이 항상 불편했다. 젠장... 이건 도대체 뭔가...

<엄마라서... 여자라서...>

이 굴레는 나에게 ‘죄책감’을 순간순간 모든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느껴지게 한다.

내 뇌는, 내 가슴은 이 굴레에서 진정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인가?

이제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해 절대 시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돌봄을 만족스럽게 해주지 못한 죄책감이 있는 <엄마>가 있고, 집안일을 깔끔하게 해놓지 못한 죄책감이 있는 <여자>가 있다. 젠장 할 ‘죄책감’ 찌꺼기들... 백년이 지나도 나한테서 떨어질 것 같지 않은 불안함...

양육자는 두 명이고 나는 일정 양의 자유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내 ‘입’으로는 외치지만, 내 뇌는, 내 가슴은 아직까지 절대 자유롭지도 평등하지도 않다. 내 온 몸에 진하게 물들어서 쉽게 빠지지 않는 이 ‘가부장제’ 찌꺼기가 남긴 얼룩...


야~!!! 제발 쫌~~~~ 나한테서 떨어져 줄래~!!!!

우리동네연구소 블루(양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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