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한 일상을 반영하듯 방에 걸린 달력은 여태 8월이다. 흘러간 시간을 아까워하며 표지를 넘기는데, 9월 표지가 너무 예뻐서 그만 웃음이 났다. 이제 그만 8월을 놓아주고, 9월을 예뻐하자는 다짐이 달력 표지 보고 들었다.
바로 곁에 두고도 몰랐던 예쁨, 이름 모를 디자이너가 고민해 만들고 여러 사람을 거쳐 내게 전해진 좋음이다.
“살고있는 동네를, 살고싶은 동네로” 만들려는 동네사람들의 모임, 우리동네연구소의 대표가 된 지 1년이 되어간다. 임기(2년)의 중간지점에서 드는 고민은 어떤 대표가 되고싶은 지, 그리고 어떤 서른을 맞이하고 싶은 지다. 고백하자면 대표가 된 후에 쫄리는 시간이 많았다. 좋은 사람들과 동네문제를 얘기하다보면 이것도 저것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나는데, 그만큼 따라주지 않는 역량이나 상황이 아쉽고 갑갑했다. 직장(장애인단체)에 공부를 아주 많이 했거나 굳이 어떤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당당하게 목소리내는 사람이 찾아올때면, 저런 사람이 대표면 어떨까하는 열등감이 불쑥 고개를 내밀곤 했다. 고민하는 나에게 한 지인이 “축구는 팀플레이”라는 말을 해주었는데, 그 말에 안심과 반성이 됐다. 혼자 앓는 것은 그만하고, 남은 임기동안 그리고 임기가 끝난 후에 나의 역할을 무엇으로 할 지 생각해야지. 그리고 이런 어리고 여린 (혹은 젊고 섬세한 성정의) 대표가 있었다는 기록을 연구소의 행적에 남겨두어야지. 연구소 안의 작은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면서 다정한 말들을 채워가야지. 자주 이렇게 밀해요. "좋아요. 같이해봐요."
"혹시 올해에는 어렵더라도 나중에는 할 수 있게 함께 기억해요." "(어려운 형편이지만) 힘 닿는 데까지 연대하겠습니다." 함께 꿈꾸고 행동하기에 연구소는 참 좋은 곳이다. 나이가 더 많다고해서 경력이 더 오래됐다고 해서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법이 없다. 대신 우리의 생각(비폭력대화를 부모에게 가르치자!)에 어떤 편견(부모교육보다는 양육자교육이 맞지않을까?)이 서려있지 않은 지 살뜰히 살핀다. 연구소 안을 가득 채운 이 헌신들에 뭐라 이름붙여야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우리의 활동이 '자원봉사'(베풂)나 '시민운동'(전문가의 영역)으로여겨지기보다는건강을 위해 밥먹고 산책하는 좋은 습관처럼 ‘동네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생활방식)으로 여겨졌으면 좋겠다. 좋아서 하는 일이 괴로와지지 않길, 다만 동네를 사랑할 이유가 쌓여가길 바란다.
2021.9.12.
우리동네연구소 혜뜬지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