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문뜩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벽면을 감싸고 올라가고 있는 넝쿨이었습니다. 도시에 세워진 아파트 벽면을 감싸고 있는 넝쿨이 잿빛도시의 풍
경을 조금은 숨 쉴 공간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상상일 뿐입니다.
아파트 벽면을 감싸고 올라가 있는 넝쿨은 고풍스러운 초록빛 풍경을 그려내는 담쟁이가 아니라 검정과 회색의 수많은 통신 케이블이었습니다. 아파트가 마치 택배 상자라도 된 것인 마냥 꽁꽁 동여 맨 줄들은 그렇지 않아도 삭막한 아파트의 숨통을 조이는듯합니다. 어디에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통신망은 도시의 자랑입니다. 우리가 편리하고 빠르게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사이 어느새 통신케이블은 삶의 공간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었나봅니다. 설치와 해지를 수십, 수백 번 반복하면서 남겨진 케이블은 이제 도시넝쿨이 되어 스스로 번식해가는 듯합니다.
대단지 고층아파트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겠지만 나름 시간이 축적된 저층 아파트나 빌라, 연립, 다가구주택이라면 예외 없이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입니다. 인터넷 설치 기사로 근무하고 있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인터넷을 해지할 경우 대체로 단말기만 수거하고 있고 케이블은 창틀 부근에서 끊어 버리고 있다고 합니다. 간혹 건물주가 옥상에 뒤엉겨 있는 케이블을 정리해 달라고 통신사마다 요청하면 쓰고 있지 않는 선들은 철거해주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마구잡이로 방치된 통신 케이블이 분명 새로운 공해인 것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제가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도 자치회장에게 통신사에 케이블을 정리해 달라고 요청해 달라고 건의해봐야겠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주택 개별적인 아닌 자치단체차원에서 통신사에 요청하는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도시의 편의성을 누림과 동시에 그 뒷면도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2021.5.20.
우리동네연구소 민선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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