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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우리동네연구소

[꿈틀대기] 따뜻한 아이스크림

내가 살던 고향마을에 3년 연속 흉년이 들어 집집마다 빚더미를 안게 되었다. 어느 날부터 아빠는 집안의 농사일은 제쳐두고 집에서 한 시간 가량 떨어진 곳으로 석산일(금덩이를 캐는 일)을 다니셨고, 그 때문에 엄마는 시부모를 모시고 4남매 자식들을 돌보며 집안 농사일까지 도맡아 힘들고 어려운 날들을 보내셨다. 그때 아빠는 그 일터를 5년 이상 다니셨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이 시기에 나에게는 잊지 못할 따뜻한 기억이 있다.

우리 집은 대나무 밭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작은 바람도 대나무 이파리가 흔들리는 모습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고요했고, 나는 엄마와 함께 부엌 옆 장독대에서 유난히도 반짝이는 많은 별들을 하나 둘 세며 아빠를 기다렸다.

그날도 아빠는 석산 일을 마치고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셨고, 우리 집 개(이름은 백구)는 늘 그렇게 꼬리치며 나보다 더 빨리 아빠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빠는 무언가를 들고 장독대로 오셨다.

순간 아빠 손에 있던 것이 나의 손에 있다. 

그것은 '팥 아이스크림'  한 개!

달콤한 것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봄이면 찔레꽃을 꺾어 먹고, 여름이면 산딸기를 따먹고, 가을이면 으름열매를 따먹고, 겨울이면 대나무밭 속 눈밭에 떨어진 빨간 겨울 감을 주워 먹는 것으로 한없이 진한 달콤함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시절!

동네에는 구멍가게 하나 없어 읍내 5일 장날에 맞춰 먹거리가 생기던 시절!

학교 문방구에서부터 10원에 4개짜리 콩알사탕을 입속에 녹이며 한 시간 가량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던 달콤했던 날들!

팥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지는 않으셨을텐데 어디서 난 아이스크림인지 나는 궁금하지도 않아 묻지도 않았다. 아이스크림은 살짝 녹아 있었다. 봉지를 뜯자 달콤한 향과 함께 국물이 살짝 흘렀다. 나는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빠르게 쪽쪽 빨아서 먹었다. 

백구는 옆에서 꼬리치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흘러내리는 국물까지 달콤했다. 백구에게는 절대 양보 할 수 없다!

국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먹으리라!

어린 나에게 그 아이스크림은 아빠가 주신 최고로 달콤한 선물이었다. 그것도 다른 형제들이 아닌 나에게만 주신 특별한 선물!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어디서부터 들고 오신 걸까?

아빠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오시는 길 중간쯤에 작은 슈퍼가 있고 그곳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집이다. 고된 일을 마치고 어두운 밤길 속에서 그 아이스크림이 녹지 않게 서둘러 어두운 밤길을 걸어오셨을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이 글썽인다.

그때는 아이스크림의 달콤한 맛을 느꼈다면 지금은 그 아이스크림 속에서 아빠의 고생스러움과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살고 있다.

우리동네연구소 바를정(유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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