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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우리동네연구소

[꿈틀대기] 생명의 무게를 느끼며


그때가 시작이었다.


2017년 9월 신나고 유익한 갯골생태공원 축제장에서 나눠준 장수풍뎅이 애벌레 한 마리를 받아 들며 애벌레가 성충이 되는 과정을 귀담아 듣고 아이들(5살 아들, 3살 딸)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800㎖ 정도의 투명하고 길죽한 통속에 톱밥을 영양분으로 먹고 크는 애벌레 한 마리가 들어 있었다.


∙ 톱밥이 마르지 않도록 1주일에 한 두번 뚜껑을 열고 물을 톡톡 뿌려주는 일

∙ 아들이 애벌레를 만져보고 싶다며 통을 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 톱밥을 쏟고 애벌레까지 밖으로 나왔던 일로 난생처음 엄지손가락 두 배만큼 통통하고 큰 애벌레를 처음 봤던 일

∙ 책장 위 구석에 올려 놓고 일정한 온도 유지와 빛을 피하기 위해 천을 덮어주던 일

∙ 기다려도 기다려도 성충이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인터넷 검색을 했던 일

∙ 톱밥 사이로 살짝 보이는 애벌레를 징그럽게 느꼈던 일

∙ 애벌레가 죽지는 않았는지 걱정하고 의심했던 일


애벌레를 키우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신경이 제법 쓰였고, 성충이 될 때까지 기다린 시간은 참 길었다.


이듬해 여름 어느날 시커먼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통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어머나! 깜짝이야! 진짜 성충이 되었네!


작은 통 속에서 그 긴 시간을 보내고 새롭게 태어난 애벌레가 고맙기도 하고,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 아이들도 좋아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암컷일까? 수컷일까? 암컷이였다. 며칠 뒤 아들은 장수풍뎅이의 멋진 뿔이 없다며 뿔이 있는 수컷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나도 멋진 뿔을 기대하고 있었기에 아들 마음을 이해했다. 그리고 수컷을 갖고 싶은 또 다른 이유 하나는 짝짓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5살 아들 녀석이 짝짓기를 어떻게 알았지? 생각했다.


우리는 장수풍뎅이 수컷 한 마리와 통, 톱밥 그리고 먹이(젤리포)를 사기 위해 축제장에서 애벌레를 나눠주셨던 21C곤충(시흥시 죽율동) 농장을 찾아갔다. 농장 할아버지에게 멋진 뿔이 달린 장수풍뎅이 한 마리와 놀이 목, 톱밥을 사고 장수풍뎅이 키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고 나니 잘 키울 자신감도 생겼다. 특이하게 암컷은 먹이를 먹을 때만 위로 올라왔고 톱밥 속에 있어 보기가 힘들었다. 반면 수컷은 놀이목 위에서 멋진 뿔을 자랑하며 암컷을 지키고 있는 모양새였다.


무더운 여름 날 아이들은 어린이집을 다녀와서 매일매일 장수풍뎅이 통을 방으로 들여와 두 마리를 방바닥에 꺼내 놓고 놀기 바빴고 아들은 자주 언제 알을 낳느냐며 묻곤 하였다. 나는 “알을 낳아도 알이 너무 작아서 눈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리고 암컷은 알을 낳고 일주일 뒤쯤 죽고 수컷은 한 두 달 더 살다가 죽는데” 라며 장수풍뎅이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들은 이야기를 듣고 약간 놀란 듯 했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통 안에 날파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름이라 그런가? 달콤한 먹이(젤리포)가 있어 벌레가 생긴 건가? 혹시 알을 낳은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날파리가 더 생겼고 어느 날 암컷이 죽고 수컷도 죽었다. 아들은 장수풍뎅이를 묻어 주자고 했다. 아들 3살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산소에 몇 차례 다니면서 죽으면 땅에 묻힌다는 것을 알았을까? 우리는 장수풍뎅이를 옥상 화분에 묻어주었다.


사람이 죽음을 인식하는 나이 5살!

그때 나는 아이가 좋아하던 장수풍뎅이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 아들의 마음을 잘 살피지 못했다.


2019년 늦여름 장수풍뎅이가 죽고 아들은 장수풍뎅이를 또 키우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21C곤충 농장을 찾았고, 다시 만난 농장 할아버지가 더 반가웠다. 그 동안 장수풍뎅이 키웠던 이야기를 나누며, 먹고 남은 먹이(젤리포)가 계속 남아있어 날파리가 생겼고, 톱밥에 수분이 부족했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나는 무슨 욕심이 생겼는지 아이들과 함께 애벌레 4마리와 톱밥을 통 안에 가득 담고 돌아왔다.


겨울을 대비해서 스티로폼 박스 안에 애벌레 통을 넣고 옥상 계단에서 키우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옥상을 오르내릴 때 마다 박스 뚜껑을 열고 확인했다. 그러다 어느 날 시커먼 애벌레 시체가 보였고, 세 마리가 죽고 한 마리만 남았다. 그 동안 내가 톱밥을 손으로 뒤적거리며 수분조절을 해줬어야 했는데 굵직한 애벌레가 손으로 만져질까 무서워 톱밥 위에만 물을 뿌려주고 톱밥 속을 돌보지 않았던 탓이었다.


번데기 시절에는 애벌레를 건드리면 우화부종이 될 수 있다고 아이들을 주의를 시켰을 때 아들은 자기가 뚜껑을 열고 닫아서 헤라클레스가 안되면 어떡하냐고 멋진 헤라클레스가 되어야 한다며 밥 먹듯 걱정하는 소리로 나를 힘들게 했다. 아들이 바라는 것을 종이에 적고 기도를 끝마쳤을 때 아들은 조금 잠잠해졌다.


2020년 여름 어느날!

아들의 소원은 이뤄졌다.


멋진 뿔을 가진 장수풍뎅이 한 마리가 톱밥 위로 올라와 있었다. 다행히도 뿔이 달린 장수풍뎅이라서 나는 기뻤다. 놀이목을 올려주고 처음과 달리 먹고 남은 먹이는 남겨 놓지 않았다. 아이들은 옥상을 오르내릴 때마다 박스 뚜껑을 열어 확인했고 아들은 날아가지 않게 뚜껑도 잘 덮어주며 여름 날을 심심하지 않게 보냈다. 사실 아들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장수풍뎅이는 뿔이 아주 조금 옆으로 틀어져 있었고 등껍데기가 살짝 들어간 것이 우화부종으로 생각되어 날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아들은 장수풍뎅이와 잘 놀다가도 한 마리만 있어서 짝짓기를 못한다며 한 마리가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한 마리를 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장수풍뎅이는 여름 날을 홀로 지내다 어느 날 죽어서 옥상 화분에 묻혔다. 그 뒤로 아들은 장수풍뎅이를 또 키우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들은 한가람문구점에서 파는 물고기를 보고 사달라고 했다. 나는 물고기 구피 세 마리와 작은 어항, 수초, 장식돌, 물갈이제, 먹이를 사고 집으로 왔다. 물을 갈을 때는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뜰채로 건지게 했다. 아이들은 즐거워 보였고 서로 하겠다고 야단이였다. 나는 그때마다 “살~살~ 그러다 물고기 죽겠다!“ 라며 소리쳤다. 그렇게 물도 잘 갈고 먹이도 잘 줬지만 한 달도 안되어서 물고기는 다 죽고 말았다. 키우기 쉬어 새끼 분양도 한다는 구피를 잘 키우지 못했고 모두 옥상 화분에 묻어 주었다. 그 뒤로 구피 다섯 마리를 더 사서 키우다 또 모두 죽고 옥상 화분에 묻었다.


아들은 또 금붕어를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수족관 구경도 시켜주고 건강한 물고기를 사서 키워보고 싶었다. 동네 수족관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와 반수생 거북이도 있었다. 금붕어에 관심 있던 아이들은 거북이도 사고 싶어 했다. 물고기 대신 거북이 두 마리를 골랐다.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물고기보다 더 오래 살겠지? 생각했다.


수족관 사장님은 “두 마리를 가져가면 한 마리는 작고 한 마리는 크다고 손님들이 그래요. 아들이 군대 갈 때 부모한테 맡겨 두고 다녀와서도 계속 키워요! 거북이도 자기 이름을 불러주면 좋아해요!”라고 하셨다. 사장님의 오래 산다는 말씀에 나는 거북이가 더 맘에 들었다. 아들이 한 마리, 딸이 한 마리씩 골랐고 사각어항과 모래 돌, 먹이, 여과기도 샀다. 아들은 꼬북이!, 딸은 루비!로 이름을 지었다.


거북이를 가지고 집에 왔을 때 남편은 더 큰 어항과 거북이 두 마리를 보고 이걸 또 샀냐며 말했지만, 감마루스 먹이도 사주고 매일 아침 출근길에 먹이를 챙겨주고 퇴근 후에도 매일 들여다 보곤 했다. 아이들은 먹이를 서로 주겠다고 싸웠고, 꼬북아 먹어! 루비야 먹어! 서로 자기 거북이가 잘 먹어야 된다며 응원했다.


수족관 사장님 말씀처럼, 꼬북이는 점점 몸집이 커졌고, 루비는 조금도 크지 않아 두드러지게 차이가 났다. 루비도 조금 있으면 크겠지! 기다렸고, 루비가 먹이를 잘 먹을 수 있게 가까이 먼저 주곤 했지만, 루비는 물 밖에서 등껍데기를 말리고 있을 뿐 잘 먹지 않았다. 한 두달이 지나도 루비는 그대로 였다. 한놈은 잘 먹고 한놈은 너무 먹지 않아서 걱정이 되었지만 딱히 방법이 없었다.


어느날 아침! 루비가 물속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등껍데기가 말랑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또 죽었다.


5살 딸은 “내 루비! 내 루비!” 하며, 슬프게 울었다. 아빠와 아이들은 루비를 옥상 화분에 묻어 주었다.


7살 아들은 꼬북이를 수족관에 가져다 주고 가끔 보러가고 싶다고 했다. 꼬북이가 죽으면 안되는 이유였다. 꼬북이를 수족관에 가져다 줄까? 다른 친구집에 줄까? 그냥 키울까? 한 마리를 더 사야 할까? 며칠 동안 고민을 하다가 수족관에 전화를 했다. 거북이 두 마리 키운 이야기를 하면서 혹시 “거북이 키워주시나요?” 여쭤보니, 상태를 봐야 하고 괜찮으면 판다고 했다. 아들이 가끔 꼬북이를 보러가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수족관에 보내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가을 어느 날 나는 어항 속 온도를 맞추기 위해 아쿠아 히터를 사고 거북이 전용 사료도 구입했다.


혼자 있는 거북이가 마음에 걸려, 아이들에게 물었다.


5살 딸에게 “루비가 또 있었으면 좋겠어?” “응!”

7살 아들은 “꼬북이가 혼자 있으니까 찍짓기를 못하잖아!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싼타할아버지한테 거북이 한 마리를 선물 받아서 수 천 마리의 알을 낳으면 잘 돌봐야 해”라고 했다.


“애들아? 꼬북이 혼자 있으니까 어떨 것 같아?”


아들은 “심심할 것 같아!”

딸은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 라고 했다.


아이들은 생명이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과 혼자는 외롭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은 것도 같다. 하지만 나는 거북이를 잘 키울 자신이 없고, 아이들의 바람대로 거북이 한 마리를 더 사서 키우는 것을 오늘도 망설이고 있다.



바를정 유정순




P.S. 나는 대야도서관 계단 벽면에 걸린 이 시가 좋다. 읽을 때마다 생명에 대한 생각이 내 마음에 와닿기 때문이다.


꽃이라고 다 웃는 건 아니다

이지선


어찌

꽃이라고 다 웃기만 하랴

꽃망울이 터지는 아픔을

보는 이가 환희로 여긴 뿐이지

꽃은

아름답게 피는 건 아니다

생명을 전하기 위한

끊임없는 부활의 작업인 것이다

꽃이 아름다운 건

생명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일 게다

아픔 없이 태어나는 생명도 없고

웃기만 하는 꽃도 없다

살아있다는 것

아름답다는 것

그만한 대가를 치르고 받아오는

찰나의 시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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