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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우리동네연구소

[꿈틀대기] 신념, 삶, 그리고 나


1985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일 때 방송부 연합회에서 알게 된 한 여학생이 환경보호를 위해 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비누로 머리를 감고, 식초로 린스를 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바로 실천으로 옮겨 지금까지 비누로만 머리를 감고 있다. 처음 시작은 그때 좋아하고 있던 여학생과 무언가 함께 실천하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 후 일 년여가 지나 그 여학생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 이후에도 비누로 머리 감기가 중단되지 않은 것은 나름의 환경보호에 대한 의식과 작은 신념이 내 안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에게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농담 반 진담 반 ‘국어책’이라고 답하곤 한다. 실제 중고등학교 국어책을 통해 많은 글이 여전히 내 안에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중에서 ‘신념을 가지고 살자’라는 수필은 중요한 삶의 지표가 되었다. 나는 지금 여러 가지 신념을 가지고 살고 있다. 앞서 말한 환경에 대한 신념을 비롯한 정치적 신념, 종교적 신념, 시민사회에 대한 신념, 도덕에 대한 신념, 정의에 대한 신념, 돈에 대한 신념 등등. 내 안에 세워진 신념들이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 의지 방향에 중요한 지표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내 삶의 곳곳에 신념이 벽에서 떨어져 들떠 있는 벽지마냥 떨어져 있음을 보게 된다. 한마디로 신념과 삶의 괴리다. 삶이 신념과 함께 가지 못할 뿐 아니라, 앞서 가고 있는 신념을 그 자리에 서서 무기력하게 바라만 보고 있기도 하다. 글의 시작에 언급했던 나의 환경보호에 대한 실천은 딱 거기까지다. 신념과 삶의 괴리는 나의 행동에 많은 모순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스로 거짓된 사람이라는 자괴감을 갖게 한다.

일생을 자기 신념에 맞춰 같은 보폭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겠지만, 어떤 학습과 수양이 있어야 적어도 신념으로부터 열 걸음 뒤에서라도 따라가며 살 수 있을까 묻게 된다. 자기의 신념을 자기의 삶에서 구현해내는 것, 이것이 삶의 최고의 가치가 아닐까 싶다. 물론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자가 그 신념을 통해 자기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신념도 나의 것이고 삶도 나의 삶인데, 나는 신념과 삶 그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역시 12월 어느 날 밤,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해지기 딱 좋은 시간이다.

우리동네연구소 박민선

2020.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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