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립 캠프(crip camp)>라는 영화를 보았다. ‘캠프 제네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웠다. 캠프에서는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뭐든 할 수 있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제공되었다. 수영하고, 야구하고, 공을 차고, 싸우고, 노래하고, 춤추고, 요리하고, 먹고, 마시고, 자고, 연애를 하고, 토론을 했다.
한 친구가 주제를 던졌다. “이 자리에서는 부모님 애기를 해볼게요. 부모님이 우릴 어떻게 귀찮게 하는지, 무슨 거짓말을 하는지. 뭐든지요.”
“과잉보호요. 전 끔찍하게 싫어요.”
“우리 부모님은 정말 좋아요. 근데 가끔은 너무 좋아서 싫어요. 날 너무 보호하고요. 내가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일들이 있는데 '아니, 넌 못해. 장애가 있잖아.'라고 해요. 내가 휠체어를 타는 사실을 계속 상기시켜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많은지 모르는 거 같아요.”
“엄마한테 의지하는 일들이 있어요. 그래서 원하는 만큼 싸우지 못해요.”
부모님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간 뒤, 낸시 로즌블룸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 귀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포효하는 것처럼 들렸다. 알아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영상 속 그녀의 이야기를 알아듣고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있었다.
함께 앉은 이가 물어봤다.
"끝났나요?"
낸시가 대답했다.
"네"
함께 있는 이들에게 다시 물었다.
"이해한 사람 있어요? 일부라도?"
같은 학교를 다녔던 스티브 호프만이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낸시와 같은 뇌성마비였지만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말을 할 수 있었다.
"낸시가 한 얘기는 모두가 원하는 이야기에요. 살면서 가끔은 혼자일 수 있는 것요. 혼자 생각한다든지, 혼자 있다든지, 내 생각에 낸시가 하는 말은 사생활의 권리를 거부당했다는 거예요. 그 얘기야?“
낸시가 대답했다.
"응, 맞아“
스티브가 이어서 이야기 했다.
"난 그게 중대한 권리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아듣고 이해하기를 포기했던 낸시의 이야기는, 매우 소중한 의견이었다. 난 한 대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꾼다고 하면서 내가 무시하고, 지나치고, 듣기를 포기하는 목소리들은 얼마나 무수히 많은가.
“우린 캠프에서 우리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걸 봤어요. 어떤 게 존재하는지 알아야 그걸 얻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거예요.”
캠프 제네드에서 편견과 꼬리표를 모두 떼고 어떻게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지를 경험한 사람들은 캠프가 끝난 후에도 자신이 살 수 있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미국 사회를 향해 외치고 투쟁했다. 캠프 제네드는 미국 장애인권운동의 발원지가 되었다.
“계속해서 토론했어요. 덕분에 깨달을 수 있었죠. 함께 일을 하는 방법을 고심해야 한다는 걸요. 캠프에서 뿐만 아니라 캠프 이후에도요.”
장애를 가진 10대들이 장애인 꼬리표가 아닌 자기 자신의 이름으로 온전히 존중받는 곳, 하고 싶은 일을 해볼 수 있는 곳,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그 의견이 존중받을 수 있는 곳, 원할 때 원하는 만큼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 캠프 제네드는 유토피아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캠프 제네드와 같으면, 그곳이 바로 유토피아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외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각자가 안고 있는 어려움과 부족함을 그대로 드러내어도 부끄럽지 않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려움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 하지 않을 수 있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도록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얼마나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어도 밖을 맘대로 다닐 수 없던 사람들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없어도 얼굴을 보고 대면하여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할 수 없던 사람들이 있다. 바이러스 이전에도 자유로운 일상이 허락되지 않았던, 각자가 동등한 개인으로 존중받을 수 없었던 편견과 차별, 위계의 장벽이 있었다. 자유로운 일상과 존중받은 삶이라는, 모두에게 당연히 주어져야 하는 이 당연한 권리로부터 열외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는 감추고 눈치보고 닥치고 성실히 살 수 밖에 없었다.
더 이상 코로나 시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들 말한다. 코로나19는 기존의 생산능력과 소비능력에 기생했던 자본주의 경제가 더 이상 기존과 같이 유지될 수 없음을 고하고 있다. 캠프 제네드의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하다. 열외라고 배제했던 모든 차별의 꼬리표를 떼고, 끊임없이 사람들과 토론을 해야 한다. 노동자와 경영주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아동과 비아동이, 여성과 남성이, 다양한 성별과 성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다양한 국적의 사람 등이 다함께 만나 꼬리표 떼고 동등하게 서로를 존중하며 토론해야 한다. 코로나 19 전과 후 각자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야기하고, 코로나 시대에서 안전하고 행복한 일상을 위해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해야 한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결정하면, 그 대화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의 안전과 행복은 또다시 열외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선박의 운항이 줄어드니, 선박 소음으로 인해 긴 대화를 하지 않았던 바다의 고래가 긴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늘을 떠다니는 비행기의 운항도 줄어들었으니, 새들 또한 하늘을 날며 긴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고래와 새도 원하는 만큼 대화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덜 생산하고, 덜 소비하자.
더 이상 생산능력과 소비능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나누고 평가하지 말자.
누구든 자유롭고 동등하게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경제적, 물리적, 문화적 환경을 만들자.
코로나19가 재난자본주의가 아니라, 누구도 배제되지 않을 유토피아의 시작이 되길. 우리 일상이 캠프 제네드와 같이 되길 바라본다.
- 우리동네연구소 지렁이(안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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