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한 지 두 달여가 조금 넘었다. 오래됐지만 크지 않은 매체에서 책에 관한 기사를 쓴다. ‘우리(^^)’ 신문에는 매일 책을 2~3개씩 소개하는 꼭지가 있다. 대략 6~7문장을 쓰면 된다.
요즘 내가 제일 재미를 느끼는 건 아동 도서를 소개할 때다. 인류가 실은 위기 상황에서 남을 돕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책이나 유명 기자가 세계화의 진실을 폭로한다는 내용도 흥미가 있지만, 일단은 나중이다. 수채화로 치장된 표지의 양장본 그림책이나 뭔가 사소하지만 우주처럼 커다란 고민을 안고 있는 청소년 소설책을 출판사에서 보내준 박스를 언박싱하면서 만날 때 더 설렌다.
그 책들에는 내가 공부에 매진하느라 무심코 지나쳐버린 유년기와 청소년기의 감정이 들어있다. 바람결을 따라 걷다 동네 벽에 그려진 얼룩을 보고 앞발을 내미는 고양이를 떠올리는 아이, 비혼모인 엄마가 친구의 오빠와 결혼할 것 같아서 그래서 엄마가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지 않을까 맘졸이는 ‘노을’이의 이야기, 아이들의 사춘기를 기록하는 동시 짓는 사람의 이야기 등. 얼마 전에는 인상적인 문장을 얻었다.
“어른들의 아이들의 사춘기를 두고 ‘으레 사춘기라서 그렇다’는 표현은 어린이들의 마음 하나하나를 단순하고 납작하게 만든다”(책 ‘바람의 사춘기’의 소개글을 일부 수정)
내게 이런 글들을 보는 건 참 유의미한 일이다. 토요일에는 글에서 벗어나 실제 아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저번 주에는 포켓몬과 우주를 좋아하는 땅콩이(가명)에게 강의를 들었고, 그의 누나 새싹이에게 그림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해박한 지식에 한 수 배울때도, 바늘 같은 일침에 아차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쓰는 그 짧은 기사의 첫문장을 쓸 때는 항상 고민이 든다. 땅콩이와 새싹이와 같은 날카로운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게 써야할텐데 어쩐지 더 조심스러워 진다. 보도자료엔 책을 소개하면서 이 시대 ‘어린이들을 위한’이라든가 ‘청소년들을 위한’ 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 나는 이 ‘위함’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나의 ‘위함’ 어쩌면 그들에게 위함이 아닐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의 괜한 말이 훈계조로 들릴까봐. 그래서 요즘 내 최대고민은 아니고 조금 고민은 바로 이런 것이다. 첫문장이 전체글의 시작을 알리는 역할인 만큼 어떻게 이 좋은 이야기들을 소개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게 인생의 또 한 시절을 보내는 내 일이다.
우리동네연구소 하늘땅콩땅
202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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