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참 많은 차별이 있다. 그 수많은 차별 중에 오늘은 ‘키’라는 차별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어찌 보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어떤 상처든 그것을 가진 사람에겐 아픈 법이다.
‘키’라는 차별도 너무 크거나 작아서 아픈 사람이 있다. 다행히 선천적으로 긍정적인 사람은 이를 극복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아나가겠지만, 누군가는 이것이 열등감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이 열등감은 또 그 사람의 성격을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할 것이다. 혹자들은 한 사람의 열등감을 그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등감은 본인이 처음부터 만든 것이 아니라 이것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환경요소들이 있다. ‘키’라는 것도 어려서부터 주변인들이 자신도 모르게 했던 평범한 말이나 눈빛 행동이 그에게는 상처가 되고 이 상처를 다시 받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방어기제로 결국 열등감이라는 것을 형성시킨다.
나 역시 어려서부터 이러한 차별을 오감으로 느끼며 살아왔다. 위아래로 훓어보는 불편한 눈빛, ‘키도 작아가지고 뭘 한다고~’, ‘쪼깐~한게 어디서~’, ‘어머~ 작으니까 귀엽네’, ‘넌 키 작은 것만 빼면 진짜 괜찮은데~’ 라는 비하와 칭찬의 말들, 행동들, 농담들까지도... 칭찬을 하고 있지만, 결국 키가 작다는 외모를 비하하게 되는 말들. 이러한 것들이 결국엔 한 사람의 마음에 상처의 흔적으로 모이고 모여서 열등감으로 형성된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에이~ 키 작으면 어때~’ 라고 고마운 위로를 전하지만, 아쉽게도 그 말은 허공에서 맴돌고 만다. 세상 부모들 대부분이 자신의 아이가 키가 작을까봐 항상 노심초사한다는 것은 결국 작다는 것이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의 많은 생활환경들에서도 키에 대한 차별은 구석구석에 있다. 그러나 키 작은 본인조차도 이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은 불과 얼마 전이다. 아마도 여성들이 여성차별이 당연한 삶처럼 느끼며 살아왔듯이, 키 차별도 당연한 삶의 하나로 인지하고 살아온 탓이겠지.
제일 일반적인 것은 옷을 구매할 때, 포동한 몸매를 위한 넉넉한 사이즈의 옷은 만들어 지지만, 짧은 팔과 다리를 배려한 옷은 없다. 그래서 모든 옷들을 잘라서 입어야 한다. 그러다보니 기본 디자인이 망가진 어정쩡한 옷을 입어야 한다.
또 어떤 의자에 앉아도 항상 다리가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래서 키 작은 사람은 다리 저림을 숙명처럼 달고 살아간다. 의자에서 밥을 먹거나 공부를 하게 되면 다리가 땅에 닿지 않아 저리기 때문에. 양반다리로 의자에 앉아서 하게 되거나 어딘가에 다리를 걸쳐서 앉게 되어 바른 자세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척추측만증, 골반틀어짐, 구부정한 자세들을 만들어 고질적인 허리통증을 가지게 한다. 다행히도 책상 발받침이라는 것이 생겨나서 이를 대신하긴 하지만, 사무실에 붙박이로 일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큰 효용성은 없다. 의자 높이조절 되는 것도 있지만, 그렇게 조절하면 또 책상이 높아지는 현실. 아... 참... 불편한 일상...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버스나 지하철 의자는 또 어떤가. 어쩌다 의자에 앉게 되어도 그리 달갑지 않다.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중에 대롱대롱 흔들고 있는 나의 다리, 웃음을 참으며 실룩거리는 표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애써 미소 지으며 창밖을 쳐다보지만, 그날은 기분 좋지 않은 하루가 되고 만다. 또 버스나 지하철 중에 예전 것은 손잡이가 높이 달린 것들이 많다. 차가 급정거라도 하게 되면, 손잡이를 잡지 못한 나는 그대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아... 수치스러움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다. 머리 속에서 절로 욕이 나온다. ‘아 씨. 누가 손잡이를 저딴 식으로 만든 거야. 키 작으면 차도 타지 말라는 거야?’. 경제적 여유가 생기자마자 운전을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환경을 생각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겠지만,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아직은 나의 수치심까지 커버하지는 못하는 듯하다. 아... 그러나 운전을 하면서도 이러한 불편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의자에서 엑셀 밟으려면 최대한 몸을 앞으로 내밀어야 하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말한다. ‘너 차 핸들에 붙어서 운전하는 것 같애. 위험해 보여... 좀 뒤로 나와서 해’. 아 씨... 또 욕나온다... ‘나도 그러고 싶다고~ 엑셀이 너무 먼데 어쩌라고~!!!!’ 그렇게 핸들에 붙어서 운전해도 다리에 힘주고 긴장하며 운전하니, 2~3시간 운전하고 나면, 다리에 부종오고 쥐나서 한참동안 힘들어진다. 운전석 머리받침은 또 어떤가. 내 머리보다 한참 위에서 혼자 놀고 있어서 운전을 시작한 이래로 목통증을 항상 달고 산다.
안마의자도 마찬가지이다. 내 돈 주고 안마 받는데도 결국 짜증나서 일어나버린다. 발목을 주물러야 할 곳은 혼자 공중에서 윙윙대고 있고, 목과 어깨를 주물러야하는데 정수리 위에서 윙윙대고 있고... 참... 빡치는 소소한 차별들이 여러 곳에 있다.
빨래감 꺼내려다 거꾸로 처박힌 적 있는 통돌이 세탁기. 혼자 빠져나오지 못해서 한참을 애먹었던 기억... 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기분상한 일인가... 비싼 드럼세탁기를 카드할부로 사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기성품들이 정해진 평균키에 맞춰져 있기에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일상이 될 뿐이다. 키가 너무 커서 불편하다는 한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은 씽크대 상판 수납장에 자꾸 머리를 부딪친다고 하며 불평하였다. 본인은 이를 부럽다고 하며, 나도 한번 그곳에 부딪혀 봤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함께 웃은 적이 있다. 웃으며 말했지만, 웃지 못 할 일상의 차별들은 이외에도 많지만 어찌 모두 나열하랴... 내 목숨이 위협받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에 위협은 받고 있다. 다리저림으로 인한 부종, 허리틀어짐과 측만증으로 인한 허리통증, 어깨와 목통증, 혈액순환장애, 무릎관절 통증 등, 다방면으로 건강의 적신호가 오고 있다. 과연 이 모든 것을 개인의 문제라고만 치부하고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가?
어느 날 횡단보도의 보도블럭이 차도보다 높은 것을 보고 인상을 찌뿌리며, ‘아니, 이렇게 만들어 놓으면 휠체어가 어떻게 지나가라고... 참...’ 하고 혀를 차며 한심해 한 적이 있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 키 작은 사람에게도 이런 힘든 차별들이 있는데, 그걸 이렇게 불편하겠다고 생각해 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키작은 이들이 겪는 소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다.
우리는 한번 쯤 생각해 봐야한다. 나와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어떠한지. 나의 기준으로 보는 것이 아닌, 다른 이의 기준에서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 시선이, 수많은 차별이 존재하는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작’이 되지 않을까.
2021.2.11.
우리동네연구소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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