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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우리동네연구소

[별빛일기] ‘진’이라는 이름의 의미

오늘은 아이가 태어난 지 148일째 되는 날이다. 이는 김종철 선생님이 세상을 고하신지 148일이 되었다는 것을 이르기도 한다.


2020년 6월 25일 오후. 아내가 분만실에서 5분 간격으로 진통을 하고 있었고, 나는 초조하게 옆에서 손을 잡고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빨리 이 고통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하며 같이 숨을 쉬어주고 말상대가 되어주는 것 밖에는 없었다. 진통이 좀 더 심해지는가 싶어 밖에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니 내진을 할테니 잠깐 밖에 나가 있으라고 한다. 그러더니 무통주사를 한번 더 놔주겠다고 했다. 혹시나 엄마나 아기가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문밖에서 마음을 달래보려 핸드폰을 켜보는데 핸드폰을 켜자마자 김종철 선생님이 작고했다는 메시지가 보인다.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얘기는 건너들은 것 같지만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시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터라 믿기지 않았는데 거짓말 같지는 않았다. 충격을 받을 새도 없이 내진이 끝나 문을 열고 나오는 간호사를 보자마자 다시 분만실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갑자기 배에 붙여서 태아의 심박수를 체크하던 기계음이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원래 예정일은 내일이었다. 아내는 아직 진통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오늘은 검진을 받으러 왔는데 담당의가 자궁문이 2cm 열렸으니 오늘 출산하자고 했단다. 나는 출산이 그렇게 마음대로 시간을 정해서 할 수 있는건가 의아했지만 병원에 들어가보니 이미 아내는 입원 수속을 밟고 옷을 갈아입은 후 촉진제를 맞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내가 진료를 받는 동안 나는 병원 밖에 있어야 했기 때문에 진료부터 입원까지 이뤄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무런 질문도 할 수 없었던 것이 너무 속상했다. 그렇다고 갑작스런 입원에 역시 당황하여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한테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심박수가 계속 떨어지자 다시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다. 촉진제를 맞아서 그런게 아닐까, 무통주사를 너무 많이 주사한게 아닐까, 왜 두 번째 무통주사를 놓을 때는 마취과 의사가 오지 않았을까, 별별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에 젊은 간호사 몇 명이 급하게 오더니 아내를 왼쪽으로 눕혔다 오른쪽으로 눕혔다 한다. 그래도 심박수가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자 응급수술을 해야한다며 수술실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나서는 나에게 동의서에 사인을 해야한다고 했다. 급하게 동의서를 읽고 사인을 하기는 했는데 워낙 엉겁결이라 동의서에 무슨 내용이 쓰여 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인을 하고 나니 수술실 앞에 있지 말고 수술실에서 20m정도 떨어져 있는 대기실에 있으라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을 함께 할 수 있는 자격이 박탈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순간이었는데 엄마는 마취약에 취해, 아빠는 문 밖으로 20m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느라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가슴에 담지 못했다. 대기실에 있는데 누가 불러서 수술실 앞으로 가보니 깨끗이 씻겨진 아기가 담요에 싸여 안겨있었다. 엄마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고 했다. 감격스러우면서도 서글펐다.

아이는 신생아실로 가고 아내는 다시 분만실로 돌아와 마취가 깨길 기다렸다. 마취에 취해 자고 있는 아내 옆에 앉아 아이의 탄생소식을 주변에 알리면서 쌓여있는 메시지를 확인해보니 김종철 선생님이 소천하신게 사실이었다. 생전에 직접 만나 뵌 것은 부천에 특강을 오셨을 때 찾아간 적 한번 뿐이었지만 격월간 녹색평론으로 접하며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던 김종철 선생님은 가까운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죽음이 큰 상실로 다가왔다. 김종철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과 아이의 탄생소식을 모두 접한 단체 채팅방의 한 분은 인생이 보인다고 하셨다. 누군가 떠나면 그 자리에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탄생과 죽음. 시간은 흐르고 세대는 바뀐다. 거스를 수 없는 시간에 살면서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 탄생과 죽음의 사건이 짧은 시간 안에 교차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임신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엄청 기쁘기도 했지만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가장 겁이 나는 건 과연 앞으로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평화로울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었다. 기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아 식량난과 물부족으로 이어지면 사회가 큰 혼돈에 휩싸이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세상은 온갖 폭력으로 물드는게 아닐지.. 현재 기후위기의 진행상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한데 이런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게 몹쓸 짓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방바닥에 혼자 앉아서 걱정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나보다. 아내가 오더니 무슨 걱정이 있냐고 묻는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걱정을 솔직히 이야기했는데 아내가 대뜸 나보고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다. 나는 당연히 행복하다고 답했다. (이 세상에 부인이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을 때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간큰 남편이 몇이나 있을까 싶다) 그랬더니 당신이 지금을 행복하게 살고 있고,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꿈꾸면서 노력하듯이 태어날 아이도 그렇게 행복하게 살 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가지고 있던 걱정은 자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애초에 생명이 잉태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리는 나에게 없었다. 지금의 기후위기가 극단적인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땅이 척박해지고, 먹을 것이 없어지고, 삶이 궁핍해지고, 사람들 간의 반목이 심해져 세상이 암담해 진다고 해도 그 곳엔 사랑도 함께 존재 할 것이다. 어쩌면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사랑은 더 붉게 타오르고 인류애는 더 밝게 빛날 수 있다. 인간의 욕심이 폭력으로 발현되고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오히려 인간의 사유는 깊어지고 인간의 아름다움은 빛이 날 수 있다는 것을 1,2차 세계대전 전후를 겪었던 사상가들의 책을 보며 발견하지 않았던가.

‘아이들이 희망이다’라는 뻔한 구호가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나의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사다리를 타고 높은 지위에 올라 우리 가족의 살림이 보다 풍요롭게 해주길 바라는 희망이 아닌 새로운 시대의 구성원으로서 각자 그 무게를 짊어지고 그 무게만큼의 빛을 발하여 우리 주변을 보다 밝고 따뜻하게 만들길 바라는 희망으로..

물론 기후위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가기 전에 멈추길 바라지만 설사 상황이 안좋아진다고 해도 우리의 다음세대는 그 안에서 어떻게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를 끊임없이 고민할 것이고 서로 사랑할 것이며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실 것이다.

어두울수록 밝게 빛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별 진(辰)자를 그렸다.

2020.11.17.

우리동네연구소 안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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