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일주일 동안은 넥칼라를 하고 있으라고 했으나, 불쌍한 마음에 하루 전에 풀러 주었더니 수술 부위를 핥다 그만 피가 묻어 나왔다. 수술한 병원에 전화했더니, 심하지 않으면 하루는 지켜보라며 안심을 시켰다. 그런데, 내가 안심이 안 되어 전화를 걸고 또 걸고. 그냥 병원에 데려 오라고 했다. 울면서 간 나에게 병원비는 받지 않았다. 의사가 왜 그렇게 걱정이 많냐며 언제부터 바다를 키웠는지 물었다. 사실대로 길고양이 출신이라고 하면 함부로 대할 것 같아 커서 입양된 아이라고 했다. 한 두번 더 병원에 간 뒤 사정을 얘기했더니, 이미 의사는 알고 있는 눈치였다. 누구에게도 무시당하지 않는 고양이로 키우고 싶었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라고 인터넷에 나와 있었으나, 바다는 문만 열면 나오려고 했다. 같이 산지 3개월. 길에서 살던 아이라 산책도 가능할 것 같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동네 찻집에 바다를 데려갔다.
잘 놀던 바다가 갑자기 좁은 틈이 있는 마룻바닥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간식도 주고, 장남감도 가져다 놓았으나 나오지 않자 남편은 마루를 뜯어야 한다며 정색을 했다. 진정이 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주인장이 직접 톱으로 바닥 연결부위를 뜯어냈으나, 바다는 나오지 않았다. 출근문제로 남편은 화가 나서 집에 가고, 나와 주인장은 새벽 1시까지 바다를 기다렸다. 컴컴한 가게에서 바다가 움직이자 내가 들어가서 바다를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다를 안고 집에 갔으나, 그냥 나가 버리라는 남편의 잠꼬대를 들었다. 맘 졸이다 찾은 바다에게 한 말이라 그냥 넘어가려했다가 한편 서운하고 찾느라 고생한 나에게 쏟아 붙는 말인 거 같아 서운해 눈물이 주룩 흘렀다. 그러다 잠꼬대하는 남편을 보고 가엽다는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20년 동안 둘만 있다 생긴 바다. 얼마나 서운하면 저럴까 싶다.
남편과 나는 결혼 3년 후 부터 인공수정과 시험관아기 시술, 유명한 한의원 진료 등 내 나이 마흔 다섯 살까지 참 많은 노력을 했다. 점도 보러가고 굿도 했다. 그러면서 몸도 마음도 망가져 한 때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꺼린 적도 있다. 결혼하면 당연히 아이 낳고 키우면서 나이 드는 생각을 했는데, 언제나 둘만의 공간에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대접을 받으며 편하게 살았다. 명절이면 측은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피곤했다.
바다는 우리에게 축복이었다.
조카들은 바다가 보고 싶어 더 자주 집에 놀러 왔고, 그 덕분에 동생들 얼굴 볼 기회도 늘었다. 가끔 조카가 이모가 바다를 주지 않아 속상하다고 했으나, 바다가 이모 아들이어서 할 수 없다고도 했다. 바다와 자려고 방학 때면 놀러와 자고 가고 덕분에 동생들과 즐거운 수다의 밤이 선물로 주어졌다.
바다와 함께 하면서 내가 인간이라는 이유로 많은 것을 누리고 살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보기 싫다고 돌을 던지는 사람도 없고, 시끄럽다고 내 목소리를 없애는 사람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추운 날은 보일러 틀고, 더운 날은 에어컨 틀고 문 밖에 있는 생명들에게는 무심했다. 이젠 눈이 오면 밖에 생명들이 걱정되고, 나갈 때는 간식이라도 챙겨 나가게 된다. 강아지나 고양이 뿐 아니라, 밖에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함께 하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다.
바다는 매일 코뽀뽀를 해주며 밥 먹을 때도 옆에 앉아 외롭지 않게 우리를 지켜주었다. 보호소에서 다른 고양이를 공격했다는 말은 마치 거짓말 같았다.
밤에는 팔이나 다리에 기대어 자고 낮에도 항상 기대듯 내 주변에 있어 주었다.
한번은 아빠가 오셔서,
“강아지 어디 갔어? 바다는 짖지도 않아”
“아빠, 바다는 고양이예요”
“고양이가 널 그렇게 따른다고? 난 고양이는 다 요물이라고 해서 싫어했는데”
바다를 보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다 신기해했다.
너무 이쁘고, 착하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나누어 주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첫째 동생에게 기대어 잠이 들기도 했다. 이제 동생은 두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다.
바다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치즈와 우유이다. 치즈나 우유를 먹기 위해 개인기를 선보이기도 한다. 불쌍한 표정으로 치즈를 먹고 있는 내 입을 쳐다보면서 옆에 드러눕는다. 눈이 마주치면 안 줄 수가 없다. 사료도 유기농으로 신경 써 고르고, 간식도 직접 만들어서 먹였다. 먹는 건 다 고양이 전용으로 신경 써서 먹였다. 옷이나 신발도 사주고 싶었으나, 학대라는 말이 있어 참았다. 신상 장난감이 나오면 사고 싫증내면 바꿔주고. 마치 어린 아이를 키우는 것처럼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부부의 대화도 점점 늘어 바다가 밥을 먹었는지, 대소변은 어땠는지 물어보고 옆에 있는 바다를 보며 서로에게 감사해 했다. 내가 이렇게 선한 사람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바다는 나를 성장시켰다.
TV를 보다
“요즘 불이 많이 난다. 집에 불이 나면 어쩔 거야?”
“우리집은 3층이니까 바다는 뛰어 내리면 될 것 같은데, 집을 못 찾아오면 어쩌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봐”
한동안 우린 화재 시를 대비한 여러 시나리오를 애기하며 웃었다.
우리동네연구소 최원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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