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사이에는 큰 장벽이 하나 놓여 있는 듯했다. 서로를 볼 수 없어도 몸은 가까우니 언제든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가깝지만 대화를 잘 안해서 그렇지 실은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는 어느 집안이 그렇듯 평범한 것이라 여겼다.
“밥 먹었니”
“아니”
“왜”
“배가 안 고파서”
“그래도 먹어야지”
“...”
지극히 일상적이고 형식적인 대화의 반복이 익숙해질 때 즈음, 어쩐지 이런 대화에 슬슬 역정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과연 엄마에게 어떤 존재인가. 엄마는 내게 ‘밥안부’ 말고는 해주고픈 이야기가 그렇게 없나. 서운했다. 늦둥이인 나와 엄마 사이에는 긴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아무래도 이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대화가 밥으로부터 나아가지 않는 우리 사이는 자꾸만 멀게 느껴지기도 했다.
비대면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엄마와 자주 마주하게 됐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다고 이야기가 풍성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같이 밥을 먹고 있지만,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만의 메인 반찬, ‘이야기’가 없어서였다. 갑자기 대화를 시작한다고 사이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서로의 삶을 관찰하고 보듬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했다. 엄마와의 '이야기 채널'을 늘리고 넓히는 과정이 필요했다. 엄마의 키워드를 곰곰이 생각해봤다.
“엄마의 직장... 텃밭 농사... 주식... 그리고 임영웅”
그리고 남은 내 이야기칸에는 나에 대한 믿음을 넣으려 애썼다. 사실 엄마의 시점에서 본 내 모습은 책상 앞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모습밖에 없었기에, 어쩌면 엄마의 밥걱정과 취업걱정이 드는 게 자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그것은 곧 내가 믿음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내 일상의 모습과 느낀점을 드러내면서 나를 둘러볼 수 있게끔 열어두기로 했다. 엄마의 밥걱정과 취업걱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이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걱정에 유연해졌다. 걱정과 잔소리에 담긴 단어보다는 그 마음을 기억하기로 했다.
그동안 나한테 있어서 가족이란 아쉽지만 떨쳐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재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받을 게 없다’하는 마음보다 ‘줄 수 있는 게 없을까’하는 고민이 더 든다. 그래도 예전보다는 낫다. 이런 고민이 더 나은 관계를 만드는 것 같다. ‘우리 사이’와 ‘줄 수 있음’을 고민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내게 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라고 믿는다.
2020.12.24
우리동네연구소 안지섭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