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13일은 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며 분신한지 50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전태일이 분신한 1970년은 탈식민과 분단이라는 배경 속에서 쿠데타로 집권한 군사정권이 주도한 압축적인 산업화가 추진되는 가운데 고강도의 노동착취가 자행되었고,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시대에 법으로 명시되어 있는 근로기준을 지키라는 합법적이고 기본적인 요구는 목숨과 맞바꿔야 하는 절박한 외침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 이후 우리는 매년 11월 13일을 “전태일”의 이름으로만 기리고 기억하고 있지만, 정작 70년대 노동운동의 주축은 오히려 여공이라 불리던 여성 노동자들이었다는 것도 함께 기억해야합니다. 당시 성차별적인 위계구조를 바탕으로 한 어용노조를 몰아내고 평조합원 중심의 여성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노조를 결성하며 내걸었던 ‘민주노조’운동은, 자본가들이 어용노조를 이용하여 노동자들을 통제하던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조직을 만들고 노동권을 확보하기 위해 싸워 나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성별위계의 문제로 인해 여공들이 관리직이나 어용노조의 간부인 남성들과 싸우며 부당함에 저항하는 상황이 드물지 않았고, 여공이 노조위원장이 되는 것만으로도 큰 사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김원은 <여공 1970 그녀들의 반역사>라는 책을 통해 그 동안 민주화 운동을 중심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평가를 하는 과정에서 80년대 중공업 분야의 숙련 남성 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에 비해 70년대의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평가절하한 측면을 지적한 바 있습니다. 김원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IMF시기 현대자동차노조가 여성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를 협상조건으로 거래했던 사건 등을 사례로 들면서, 노동운동 내에서도 80년대 이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배제가 진행되면서 현재의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로 이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기도 했다 주장합니다.
파견근로와 비정규직화로 노동권이 붕괴되고 일자리의 질이 악화되는 현실을 돌이켜볼 때, 김원이 주장한 문제제기는 가부장적 위계질서에 대한 비판적인 성인지 감수성을 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한 번 더 생각하게 합니다. 흔히 성인지 감수성을 이야기하면 성폭력/성희롱 방지 등의 문제로 주로 이야기되고 있지만, 지나온 역사를 조금만 더 살펴보면 성차별을 지렛대로 삼아 노동권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붕괴시키고 결국 여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와 조건을 흔들어 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고 전태일 열사 50주기’에 정부에서는 전태일에게 훈장을 수여하였습니다. 하지만 청년실업이 넘쳐나고, 그나마 있는 일자리도 비정규직이나 파견근로직/특수고용직으로 변형된 나쁜 일자리여서 많은 시민들이 여전히 과로에 시달리다 죽음에 이르는 현실에서 그 훈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많이 서글퍼집니다. 노동자의 단결권 행사로 진행된 파업에 손배가압류를 걸어 수십억 채무로 노동자의 삶을 옭아매고 노동권을 파괴하고, 기업들의 부도덕한 이윤추구와 산업재해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는 현실에서 정부가 할 일은 훈장을 수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동권이 보장되고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과 조건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일이 전태일의 외침이 외로운 독백이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지 않을까요… 그리고 또한 더더욱 중요한 것은 권리를 쟁취하고 지켜 나가는 일에 있어서 그 싸움을 해나가는 주체가 싸움을 하는 가운데 그 누구도 배제하거나 버리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또한 잊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소개한 책은 이 외에서 상당히 넓은 주제를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실에서 근본적으로 되짚어보아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기 위해 대표되는 몇 가지 내용을 이야기 드렸습니다만, 같이 싸워서 같이 인간다운 일상을 일궈가고 싶은 분들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동네연구소 김종민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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