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중 선임으로부터 어떤 사건에 대해서 취재해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임이 카톡에 공유된 페이스북 링크에는 중년 남성을 둘러싼 몇 사람들이 그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진이 담겨 있었다. 내용인즉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서 13여년 동안 근무하다 퇴직하는 경비원의 퇴임식을 마련해줬다는 소식이었다. 이게 뉴스가 될까? 아파트 주민들이 퇴직 경비원에게 조촐한 작별인사를 하는 것이 뭐가 특별할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경비원들이 종종 아파트 주민들로부터 폭언을 듣고 심하게는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고는 많이 들었다. 아파트 직고용이 아닌 외주를 통해 1년 계약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사분지일 정도는 3개월도 채우지 못한 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내 집에 대한 안전과 시설 관리를 도맡아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지만 아파트 공동체는 그들에게 쉽게 정을 붙인 적도 없는 경우가 많다. 내 집 옆에 누가 사는지도 알기 어려운데 1년 동안 자리를 지킨 경비원은 오죽할까.
그런 의미에서 한 경비원의 퇴임식은 분명히 의미있는 행사였다. 나 또한 이 좋은 사례가 널리 퍼져서 많은 아파트들이 퇴직하는 경비원에게 감사 인사라도, 지금 근무하고 있는 경비원들과 아파트 공동체가 인연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경비원이 아이가 초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될 때까지의 과정을 모두 지켜봐왔다는 말에 조금은 뭉클해졌다.
취재에 들어갔다. 페이스북 게시물을 올린 사람에게 연락해서 어떤 사안이었는지 더 자세하게 들어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상황은 이랬다. 13년 퇴직 경비원의 소식을 들은 한 주민이 다른 주민들에게 그 소식을 전하면서 퇴임식을 마련해야 한다는 공론이 모아졌다. 이 공론은 아파트 대표자 회의에 제안의 형식으로 들어갔다. 대표자 회의가 이를 승인하면서 퇴임식은 마련될 수 있었다.
하지만 뜻밖의 소식이 있었다. 퇴임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는 이야기였다. 대표자 회의는 퇴임식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꺼림직해 했다는 것이다. 퇴직하는 경비원은 그 분 외에도 2명이 더 있었는 데 그 분만 하는 게 조금 부끄럽다는 후문도 있었다. 퇴임식이 끝났는데도 이 때문에 아파트 내부는 시끌시끌하다고 했다.
퇴임식을 제안한 최초 제안자는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첫째는 아파트 주민들이 퇴직 경비원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는 미담으로 소개하기에는 진실과는 거리가 멀어서 부끄럽다. 비판적인 논조의 기사로 나가기에는 주민 갈등을 더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정중하고 간곡한 말투로 부탁했다.
이렇게까지 부탁하니 별 수 있나. 나는 상부와 논의해서 그렇게 처리해보겠다고 말했다. 다행히 기사를 내지 말아달라는 이야기가 전달이 잘 돼서 이 사건은 아파트 주민들만의 조용한 행사로 마무리 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깨달음을 줬던 사건이었다. 하나는 어떤 사건 중에는 전하지 않는 게 더 공익적일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아파트 경비원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다. 인간은 타자를 대할 때 그만의 인간성이 보인다. 우리는 친구에게는 살갑게 굴지만 동물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폭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에게 저거 ‘사람 맞아’라고 인간의 조건을 묻곤 한다.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는 정기적으로 반상회가 열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반상회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가는지 알지 못한다. 아파트 내 소통 창구가 보다 넓어지고 깊어진다면, 그리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포괄적으로 오고갈 수 있다면 아파트 내 갈등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다 다른 사람이니까, 자꾸 얘기를 해야 그간의 오해는 누그러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경비원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 아파트에서 권력 있는 사람에 의해 그의 처우가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다 이런저런 다양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될 때 그에 대한 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봤다.
2021.08.08
우리동네연구소 하늘땅콩땅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