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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우리동네연구소

[꿈틀대기] 보행도시 시흥을 꿈꾸며


이번 꿈틀대기도 다시금 시흥으로 이사 오던 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시흥으로 이사 오기 전, 살고 있던 고양시 아주 작은 마을 한 가운데 개구리와 맹꽁이가 밤새 울어대며 살아가던 곳을 파헤치고 3,000㎡가 넘는 공장을 세운다고 콘크리트를 부어대기 시작했습니다. 어렵사리 만난 시장에게 “이런 식으로 주민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에 마구잡이식으로 개발 인허가를 내주면 난개발이라고 밖에 볼 수 없지 않느냐”며 이야기했을 때, 당시 고양시장은 “난개발이라는 것 인정한다. 그렇지만 이 공장을 세우겠다는 것도 지역의 민원이고 당신의 주장도 지역의 민원이다. 난 그 민원들을 모두 차등 없이 똑같이 들어야 하는 입장이다”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답변을 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해 온 평범한 주민들은 마을 한가운데 들어서는 커다란 공장과 같은 급으로 취급해준다는 시장의 말에 감격이라도 했어야 했을까요?


우리의 시흥도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과 다리, 도로 공사 등 계속되는 난개발로 공사현장 한가운데 일상을 살고 있는 것 같은 상황입니다. 그동안 친환경 골프장이라는, ‘동그란 네모’라는 식의 말도 안 되는 논리로 골프장을 건설하고, 철새도래지에 다리를 건설하고, 시흥시민들이 사용하지도 않을 큰 규모의 관통도로를 시흥시가 책임지고 시의 상징인 소래산을 굴착하며 지나가도록 계획하면서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신개념 자해행정이라 할 만한 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에 살던 동네에서 던졌던 질문과 같은 질문을 이곳에서도 묻고 싶어졌습니다. “우리의 시흥시는 어떤 곳이 되고자 이렇게 하고 있는 걸까요?” 과거 본인의 시정이 그저 민원을 들어주느라 어쩔 수 없이 난개발을 용인하고 있을 뿐임을 솔직히 고백했던 고양시장과 마찬가지 답을 시흥시장에게서 듣게 될까 걱정됩니다.


지난번 소개해 드렸던 《자동차의 사회적 비용》이라는 책의 저자인 우자와 히로후미는, 자동차 운행은 기본적 권리가 아니라 기존에 지역에서 생활하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생활공간과 환경을 침해하고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선택적 소비행위라고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자동차를 운행하는 사람들에게 자동차가 발생시키는 사회적 비용을 고액의 세금으로 부과하여 자동차의 사용을 억제하고 사람들의 보행권과 생활환경을 침해하지 않도록 시설을 갖추고 보행권이 손상된 곳을 복원하는 재원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가 산출한 자동차세는 책이 출간된 74년 기준 한 대당 매년 200만 엔씩이나 됩니다.)


그러나 소래산을 터널로 관통하고, 계속 도로를 더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사업 타당성을 분석하는 보고서에서 자동차가 막히지 않고 운행할 수 있는 권리가, 지역에서 걸어 다니고 숨쉬며 생활하는 사람의 안전에 우선하는 권리입니다. 그 자동차들이 고속으로 달리지 못하도록 정체가 발생하거나, 그 앞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있거나,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간이 있으면 이것은 모두 비용으로 간주됩니다. 이것을 모두 걷어내고 자동차가 독점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자동차 전용도로를 더 많이 만들어서 차가 빠르게 지나가게 되면 에너지도 절약되고 비용도 절약되어 투여된 공사비보다 더 많은 비용을 절감하는 경제적 이익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사람에게 걸어 다니는 다리가 있고 생활하는 공간을 꾸려가는 일이 역으로 비용을 유발하는 선택적 소비재이기라도 하다는 것처럼 주장하며 시민들의 세금을 가져다가 도로를 더 만드는데 써야한다는 겁니다. 사람이어서 죄송해야 하는 건가요? 자동차로 태어났어야 했는데…

이제 질문을 바꾸어볼까 합니다.


소래산을 관통하는 도로를 반대하고, 주택단지 난개발을 반대하고, 철새가 도래하는 곳에 다리를 건설하겠다는 것을 반대하고 있는 우리 시민들은, 그럼 시흥시가 앞으로 어떤 곳이 되기를 꿈꾸며 그렇게 애를 쓰고 있는 것일까요?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 된 상황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개발이 진행되다 보니, 파괴되고 있는 생태와 그 속에서의 삶의 질을 이야기하며 문제제기하는 일련의 시민들의 노력들이 각개 분산되며 힘에 부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흥시가 개발되는 것을 반대하기만 하면 충분히 만족스럽고 아름다운 일상을 살 수 있을까요? 이곳 시흥시는 이미 모든 삶과 생명이 존중되어 생태가 공존하고, 모든 시민들이 장애인과 비장애인 구분 없이, 유모차와 어린이가 달리는 차 눈치 보지 않고 불편함 없이 평화롭게 다니고 생활할 수 있는 곳인가요? 지금 시흥시는 어떤 도시인가요?

소래산 터널에 대한 시민반대 서명이 시작되던 즈음에 ‘보행도시’라는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서울시의 사례입니다만 서울시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보행권/생활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며, 이 침해되어서는 안 되는 권리를 정책을 통해 시가 지속적으로 추진하도록 하는 보행권 조례를 제정하기까지 여러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으고 시민들의 지지와 서명을 모아간 이야기를 담은 책이었습니다.




1997년 시민단체를 비롯한 각계각층이 연대해 ‘서울시 보행조례’가 제정되었다. 제4조에는 “모든 시민은 안전하고 쾌적한 보행환경에서 생활할 권리를 가진다”, “모든 시민은 보행권 확보와 보행환경 개선시책의 수립과 추진에 관한 정보에 대하여 알 권리를 가진다”, “모든 시민은 보행환경 개선사업에 적극 참여하고 협력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보행조례는 서울시가 보행도시를 지향하게 된 분수령이 되었다. 서울뿐 아니라 선진국의 많은 도시에서도 잃어버린 보행권을 되찾기 위한 시민들의 자각과 함께 실질적인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드디어 시민과 도시가 오랜 기억상실증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 [보행도시] 중에서

항상 동시다발로 밀려오는 난개발의 쓰나미를 해당 지역과 부문 단체의 당사자들이 각개 분산되어 대항하기는 몹시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에 비해 담당 공무원과 건설업자들은 그들의 계획이 한번 좌절되었다 해도 언젠가는 해결해야할 과제로 상정하고 다시 준비해서 재도전하려고 들기 때문에, 한 두 차례 그 시도를 멈춰 세운다 해도 얼마 가지 않아 겉모양만 조금 바뀐 채로 다시 같은 문제가 불거져 왔습니다.

이미 추진할 것을 전제하고 궤도에 올라가버린 개발이슈들마다 뒤쫓아가며 대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 시흥시민들이 추구하고 꿈을 꾸는 시흥시의 모습과 가치를 명시하고 방향을 잡아 나가는 시흥시의 ’보행도시 조례’나 ‘녹색도시 조례’와 같은 지향의 청사진을 만들고 시흥시와 관련된 모든 개발과 변경과 보존에 대한 계획을 아예 그 시작 단계에서부터 시민들이 참여하여 공개적으로 함께 논의하고 연구하고 검토하는 기구도 만들어낸다면 어떨까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동네연구소 김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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